<스루에기384001>, 임채림, 공업용 pvc, 캔버스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와 아크릴, 가변사이즈, 2020
김해솔
초월일기
나~너
혼합재료
가변크기
너무 강한 마음을 갖고 태어나 언짢고 불쾌했던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도려내기 위해 심장을 파냈는데 마음이 심장은 아니었던 거야 그래서 마음 은 살고 그녀는 죽었는데 그녀에게 초능력이 있었던 거야 시공을 초월하는 초능력이 그래서 잠깐 다시 살았는데 그럼 어디를 파내야 하지 뇌를 파내야 하나 중얼거리며 뇌를 파냈는데 뇌가 마음은 아니었던 거야 그래서 마음은 살고 그녀는 다시 잠깐 죽었는데 그녀가 또 초능력을 발동시킨 탓에 잠깐, 다시 무한하게 반복되는 루트의 영상이 있다면 너, 이걸 뭐라 부를래?
*
솔직하게 말한다고 능사는 아닌 것 같고 믿고 있는 걸 말한다고 능사는 아닌 것 같고 작업에 대해 말한다고 능사는 아닌 것 같으므로 이 에세이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능사는 아닌 것 같고
나는 말하는 일을 좋아한다. 듣는 일을 좋아하는지는 모르겠다. 통화를 하는 건 좋은 것도 같다. 예전만큼 좋아하지는 않는다. 적고 보니 요즘엔 누구에게도 전화를 걸지 않는 것도 같다. 전화가 왔을 때 잘 받지도 않는다. 누구보다 말하는 일을 좋아했던 인간은 이제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고 느낀다. 동방신기 유노윤호의 말에 따르면, 슬럼프를 겪는 까닭은 최선을 다했다는 말과도 같다고 하니 나, 말을 해도 해도 너무 열심히 한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또 말하려고 하지? 최근에는 유튜브를 시작했다. 동영상을 하나 올리고 싶었는데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 이유가 있는데 길어지니까 생략하고 그냥 유튜브를 인스타그램처럼 쓸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올리니까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까 어쩐지 조금
하고 싶지 않아졌다.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라면 나, 말을 잘하고 싶어진 걸까? 정확히는 요즘 나,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걸까. 이것은 기획자가 제시한 이 에세이의 좌표고
Call me by my name
이것은 이번 내 작품의 제목이다. 눈치 챘는가? 영화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의 패러디다. 줄이면 둘 다 콜바넴. 농담이고 사실 제목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 최근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망했다는 건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을 시도했다는 것이고 그러니까 자주 망하는 경험 은 꽤 중요한 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 사실은 그냥 내가 게으른 거 아닐까 라고 다시 쓴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쓰자, 과거에 내가 했던 작업, 그리고 작업이 되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밝혀야만 할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게 뭐냐하면
초월.
올 봄, 초월일기라는 걸 썼다. 블로그에 비공개로 개시되어있는 3000개가량의 일기들을 마구잡이로 골라 콜라주 시키고 재구성한 것으로, 전시가 예정대로 봄에 진행되었다면 이번 전시에 전시될 것은 바로 그 초월일기의 일부였을 것이다. 그때 내가 그걸 썼던 이유는 하나였다. 더는 말걸 수 없는 대상에게 말을 걸고 싶어서.
지금은 어떻지?
마크피셔의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에 따르면, 으스스한 것은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 있는 것이다. 가령 마음 같은. 시간도 마찬가지다.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 있는 지금을, 나 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초월해보고 싶은 걸까.
지금 시간은 새벽 오시 삼십 팔분.
졸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