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루에기384001>, 임채림, 공업용 pvc, 캔버스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와 아크릴, 가변사이즈, 2020
정현배
2016-2019
*운석, 종이에 펜, 21x29.7cm, 2016
*해피엔드 오브 더 월드, 캔버스에 아크릴, 117x91cm, 2019
*앤드 엔드 앤드, pvc에 아크릴, 60x70cm, 2020
해피엔드 오브 더 월드, 앤드
끝이 난다.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아니기다리지않던.
아무쪼록 이제 곧 끝이 난다. 세상은 끝이 난다.
까맣게 응어리진 관계들은 돌이킬 수 없는 하강을 하고.
애써 구름으로 가려 두었던 세상을 향해 내리친다.
저것은 떨어질 것이다.
저것은 대기를 가르고. 구름을 뚫고.
지면을 가볍게 지나쳐 바다의 바닥까지.
우리는 춤을 춘다. 우리는 노래한다. 다가올 종말을 맞이한다.
해피엔드. 해피엔드. 해피엔드 오브 더 월드.
해피엔드. 해피엔드. 해피엔드 오브 더 월드.
이제 저것이 떨어지면 세상은 끝난다. 이제 더는 없고. 무의미하고.
황량이란 말도 무색한. 바닥조차 형성하지 못하는. 끝.
끝이 났다 끝이 났을 터였다 그렇게 기다리던 종말이 드디어 찾아왔을 터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식이 있고 발밑에는 겨우 발바닥만 한 크기의 바닥이 남아있다
끝은 아까 방금 찾아왔음에도 (아니 어제였을까 내일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어쨌든 끝이 왔다는 왔었다는 감각은 여전하다
여전히 더는 없고 여전히 무의미하고 여전히 황량이라는 말도 무색한
여전히 바닥조차 형성하지 못하는 것을 세상이라 부를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저 멀리 아니 벌써 이만큼 다가온 관계는
발바닥만 한 크기의 바닥만 있어도 이렇게 비집고 들어온다
혼자만 있어도 비좁은 공간을 헤집어 놓는다
나는 이미 춤을 췄었다 나는 이미 노래했었다 (아니 우리였을까 잘 모르겠다)
어쨌든 끝난 춤을 끝난 노래를 다시 출수는 부를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벌써 이만큼 아니 이미 지근거리에 다가온 관계는
발바닥만 한 크기의 바닥만 있어도 이렇게 비집고 들어온다
혼자만 있어도 비좁은 공간을 헤집어 놓는다
손을 잡고 입을 모아 춤추게 하고 노래하게 만든다
이미 다 끝난 것을 또다시 할 수는 없었다
끝은 정말로 끝일까, 끝이라는 말로 그것을 끝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살아가는 동안에 끝없이 등장하는 수많은 끝, 함부로 찍어대던 수많은 마침표,
끝이라는 말 다음에는 정말 아무것도 올 수 없을까,
그렇다면 왜 이미 해피엔드를 맞이한 이 세상의 편린들은 다시 응어리지는 걸까,
왜 한때 베스트였던 영화의 지루한 속편처럼
질척거리면서, 형편없게, 나른하면서, 따뜻하게
계속 이어지는 걸까,
이렇게 다음이, 그 다음이 있어도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