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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림

<스루에기384001>

2017-2020

공업용 pvc, 캔버스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 아크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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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속보] <스루에기384001> 명왕성 되다… 혜성으로 판명되어… 퇴출

 

명왕성 되다 plutoed는 미국 방언 사회에 의해 2006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바 있다. 2006년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퇴출당한 사건을 빌어 명왕성 되게 하는 것은 누구나 무엇을 강등시키는 것을 뜻한다. 명왕성은 1930년 미국의 클라이드 톰보에 의해 처음 발견되어 태양계의 9번째 행성으로 2006년 8월 24일까지 그 위치에 자리하다 퇴출당하였다. 퇴출 이유는 명왕성 발견 이후 그와 비슷한 궤도를 도는 얼음 천체들이 다수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천문학자들은 명왕성과 유사한 천체들을 모두 태양계 안으로 편입하는 것 대신 명왕성을 간단하게 퇴출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명왕성은 억울했다. 한 번도 태양계 안에 속하고자 했던 적이 없었고, 애초에 그들과 너무나 다른 궤도를 돌고 있었다. 갑자기 미국의 톰보라는 인간이 자신을 콕 집어 태양계의 다른 몇몇 천체들과 묶은 후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이란 태양계 계급을 부여했다. 절대적으로 보이는 그 계급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 자신은 상습적으로 해왕성의 궤도를 침범하여 앞지르기 때문이다. ‘수금지화목토천명해’로 불려야 할 때가 몹시 많다. 명왕성은 그 존재만으로 태양계의 질서를 어지르고 있었다. 

 

명왕성이 탐탁지 않아 하는 점은 하나 더 있다. 명왕성에게는 카론이라는 애인이 있다. 지구의 인간들은 자신과 카론과의 관계를 완전히 오인하고 있다.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은 모두 자신의 위성을 자신 마음대로 휘두른다. 중심추가 한쪽으로 치우친 관계양상을 가지고 있다. 반면 명왕성에게 카론은 행성과 위성 간의 관계가 아니다. 이들의 질량 중심은 결코 명왕성에게 혹은 카론에게 있지 않다. 이들 사이에 중심이 위치하며 마치 정교한 모빌처럼 그 중심을 돈다. 서로 기대어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들은 행성과 위성의 관계가 아닌 동등한 이중행성이라 할 수 있다. 

 

<스루에기384001>는 금융감독원 직원갤러리의 김홍도 특집전시에 2019년 9월 22일 발견되어 속해있다, 3주 만에 퇴출당한 바 있다. 아이고 명왕성 되어버렸다. 

 

<스루에기384001>는 억울했다. 한 번도 김홍도의 미적 감각에 속하고 했던 적이 없었고, 애초에 이 대가와 너무나 다른 궤도를 돌고 있었다. 공업용 pvc는 한지인 척 한 바가 없고, 스프레이 페인트는 그레피티에 가까웠지 김홍도의 가볍고 대범한 붓 선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표정, 생활상, 자연의 위대함을 보이고자 한 적 없다. 도시의 빌딩 숲과 pvc 풀들은 과하게 이질적이었다. <스루에기384001>은 그 존재만으로 갤러리의 질서를 어지르고 있었다. 

 

<스루에기384001>이 탐탁지 않아 하는 점은 하나 더 있다. 그가 갤러리에서의 위치를 스스로 증명해 내라는 압박이었다. 그는 자신을 변형시키고 싶지 않았다. 충분히 그 공간에서 많은 고통을 받았다. <스루에기384001>는 그 갤러리의 행성이 아닌 혜성이었다. 자리를 증명해야하는 행성이 아닌 잠시 들러 잔상만 남기고 갈 길 가는 혜성이다. 이제 혜성이 그러하듯 긴 꼬리를 남기고 지나가고 자 한다. 긴 꼬리의 얼음 조각들은 대기권에서 증발해 사라지거나 일부 남아 지상에 작은 크레이터를 남기고 사라진다. 그러나 그 꼬리만은 인상에 남아 두고두고 회자된다.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혜성이 나타날 때 왕조가 바뀔 것이라는 예언이 돈다. 그 꼬리가 길수록 재앙의 크기가 크다. 조선왕조실록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혜성이 보이는 조짐의 응보는 큰 것이다. 김안로가 등용되자마자 혜성의 요괴로움이 바로 나타나니, 하늘이 조짐을 보임이 그림자와 메아리보다도 빠른 것이다.’ 

 

<스루에기384001>은 <스루에기384001>이었기 때문에 꼬리가 상당히 짧아 그 요괴로움이 세상을 혼란하게 하기에 부족하다. 그러나 <스루에기384001>에는 그의 가족군인 <스루에기384002>, <스루에기384003>, <스루에기384004>, <스루에기384005>, <스루에기384006>, <스루에기384007>, <스루에기384008>, <스루에기384009>, <스루에기384010>, <스루에기384011>, <스루에기384012>, <스루에기384013>, <스루에기384014>, <스루에기384015>, <스루에기384016>, <스루에기384017>, <스루에기384018>, <스루에기384019>, <스루에기384020>, <스루에기384021>, <스루에기384022>, <스루에기384023>, <스루에기384024>, <스루에기384025>, <스루에기384026>, <스루에기384027>, <스루에기384028>, <스루에기384029>, <스루에기384030>, <스루에기384031>, <스루에기384032>, <스루에기384033>, <스루에기384034>, <스루에기384035>, <스루에기384036>, <스루에기384037>, <스루에기384038>, <스루에기384039> 등이 있는 듯하다. 

 

지금 <스루에기384001> 소행성 벨트를 지나고 있다. 주변에 질서를 어지르는 존재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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