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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 정영송

예술성이라고 하기엔 뼈대가 없어 흐물흐물한, 그렇다고 취향이라고 하기엔 거슬릴 정도로 삐죽삐죽 가시 돋은 나의 어떤 성향의 지속가능성에 대하여


2016.07~2020.09
디지털 영상, 진공팩, 종이

2min

[작품해설]
예술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을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내가 만든 글, 그림, 사진, 음악, 영화는 과연 작품의 반열에 들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이렇게 생산된 ‘반짝이는 것들’ 중 작품으로 인정받는 경우는 극소수다. 그저 섬광처럼 잠깐 이목을 끌었다가 곧바로 휘발될 뿐이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활성화되면서 ‘반짝이는 것들’은 더 많이, 더 일찍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다. 작품으로 거듭나지 못한 것들, 실패한 예술성, 부정당한 존재들이 뒤섞인 화면을 우린 매일 목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를 꿈꾸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반짝이는 것들’을 제작한다. 취향이라는 잔상에만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동적인 취향과 능동적인 예술성 사이에서 비틀거린다.
 
이 작품은 ‘반짝이는 것들’과 작품의 경계에 대해 탐구한다. ‘오래된 시작’이라는 전시제목에 걸맞게 작가는 인스타그램을 처음 사용했을 때 기획했던 ‘색깔 프로젝트’를 끄집어냈다. 2016년에 그는 랜덤으로 고른 색깔과 짧은 글을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올렸었다. 색깔을 차곡차곡 쌓으면 자신을 표현하는 흥미로운 패턴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약 3개월동안 50여개의 색깔이 모였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끝난 후 일반적인 게시물을 올리면서 색깔들은 인스타그램 지층 가장 밑바닥에 깔린 채 수면위로 떠오르지 못했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색깔들을 다시 캐내어 억지로라도 작품으로 탈바꿈시켰다. 인스타그램과 똑같이 3x3 정방형 구조에 그때 올렸던 색깔들을 그때 순서대로 나열하여 빔으로 쏘았다. 그리고 그때 작성했던 짧은 글 몇 개를 프린트한 뒤 물을 담은 진공팩에 넣어 벽에 부착했다. 팩 안에 갇힌 채 물에 잠긴 텍스트는 분명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게다가 굴절된 글씨는 왜곡된 목소리를 자아낸다. 성숙하지 않은, 불완전한, 미완성인, 흐릿한, 뿌연,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글이다. 하지만 이는 엄연히 전시공간에 ‘작품’이라는 명찰을 달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자신을 오랫동안 괴롭혔던 질문을 마주한다. ‘반짝이는 것들’과 작품의 경계는 무엇일까? ‘반짝이는 것들’을 반짝이게 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왜 수많은 ‘반짝이는 것들’은 작품이 될 수 없는 걸까? 그렇다면 ‘반짝이는 것들’은 쓸모가 없는 걸까? 내가 볼 수 있는 반짝임을 왜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걸까? 내가 만든 ‘반짝이는 것들’은 모두 실패한 걸까? 그렇다면 그 안에 담긴 나의 예술성도 가치가 없는 걸까? 예술성에 기반한 나의 존재도 무의미한 걸까? 하지만 그것들은 너무나 손쉽게 작품으로 탈바꿈하지 않는가? 다시 한 번, ‘반짝이는 것들’과 작품의 경계는 무엇일까? 
 
 
[작업노트]

2020년 9월 22일 화요일.
 
작품 명을 드디어 정했다. 덕분에 작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좀더 명쾌해졌다. 
 
2019년 11월 24일 인스타그램에 쓴 글에서 따왔다. “예술성이라고 하기엔 뼈대가 없어 흐물흐물한, 그렇다고 취향이라 하기엔 거슬릴 정도로 삐죽삐죽 가시 돋은 나의 어떤 성향의 지속가능성에 대하여.” 그렇다. 이 긴 표현이 바로 내 작품의 이름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이상한 게시물들을 자주 올렸었다. 축축한 팝송을 올렸고, 노이즈가 잔뜩 낀 흑백사진을 올렸고, 아무도 읽지 않을 책의 구절을 올렸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어두운 내 생각을 올렸다. 나는 학교를 몹시 싫어했다. 학교를 몹시 싫어한다는 뜻은 학교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나는 왜 학교에 있는 거지? 내가 이 공간에서 맡은 역할은 무엇이지? 학교를 싫어하게 되면서 나의 역할도 함께 잃어버렸다. 그래서 끊임없이 투쟁했던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을 구축하기 위해. 이 공간은 나의 존재를 지웠으니까. 나를 구축하기 위해서 나만의 “취향”을 개발했다. 예전에도 평범하진 않았지만 더더욱 날카로워졌다. 더 어두워졌고. 방어기제였던 것 같다. 동시에 나의 깊은 곳에 자리 잡았다. 시간이 갈수록 괴팍해졌다. 졸업 직후가 가장 심했다. 
 
이렇게 어두운 소리만 하는 내 자신을 혐오하던 적도 있었다.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는 뜻이니까. 다른 친구들은 예쁜 생각을 하는데. 그러니까 더 사랑 받고 인정 받는데. 나는 이렇게 축축하고 쓸모 없는 생각들에 잠겨서 도저히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장애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너무나 거친 “취향”을 가진 나 자신을 싫어했었다. 난 너희보다 우월한 취향을 가지고 있어라며 자위하기도 했지만. 그러면서 또 석탄 같은 취향을 올렸지만. 그래서 다시 또 자기혐오에 빠졌지만.
 
하지만 석탄이 열과 압력을 받으면 다이아몬드가 된다지. 나의 석탄 같은 “취향”은 인스타그램이라는 토양에 차곡차곡 쌓였다. 인스타그램은 나의 작은 전시장이었다. 나는 나의 일상을 전시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어디를 갔고, 무엇을 먹었고, 무엇을 했는지는 정말 관심 없었다. 오히려 기피했다. 그런 건 예쁜 생각하는 친구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 생각을 자주 올렸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자주 올렸다. 대부분 축축했다. 대부분 열등감에 기반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날카롭고 축축했던 감정들에 짓눌려서 신음하듯이 썼던 글들은 가장 솔직했던 내 모습이었다. 과할 정도로 비틀어서 가꾼 시적 표현들은 온전히 나의 번뜩이는 시선이었다. 터져버릴 정도로 복잡하고 어두웠던 생각들은 생동감 넘치는 나의 몸짓이었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것들은 새카만 석탄들이었다. 내 안의 새카만 석탄들. 나의 것들.
 
사람들은 점점 나의 석탄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나라는 사람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내가 올리는 노래들이 너무 좋다고 도대체 어디서 찾는 거냐고 감탄했다. 사람들은 나의 글을 좋아했다. 깊이가 있다고 했다. 그저 감성 팔이 글이 아니라고 했다. 가장 어두운 내면까지 내려가서 헤엄과 잠수를 한 뒤 들이쉬는 숨처럼 글이 깊게 들어온다고 했다. 나는 계속해서 인스타그램에 
내 생각과 음악 등등을 올렸다. 나의 석탄은 점점 다이아몬드가 되고 있었다. 더 이상 나는 이 것을 장애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목표는 그냥 다이아몬드가 아니었다. 예쁘게 세공해서 알알이 꿴 다이아몬드 목걸이었던 것이다. 나는 종종 궁금했다. 내가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석탄 같은 감정들에는 분명 번뜩이는 것들이 있었다. 예술과 맞닿은 것들이었다. 기발한 문학적 표현과 독특한 음악, 그리고 개성 넘치는 흑백 사진들. 충분히 예술이 될 수 있는 포텐셜이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 소중한 것들은 팔로우 100명을 겨우 넘은 내 인스타그램 안에서만 맴돌았다. 세상 밖으로 나가지를 못했다. 미숙아들이었다. 세상으로 나간다면 눈을 뜨기도 전에 소멸할 인상들일 뿐이었다. 나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걸 잘 가꾸어서 세상에 내보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냥 방구석에 앉아 세상에 작품을 내놓은 사람들을 시기할 뿐이었다. 말도 안 되는 것들로 트집 잡으면서 다시 한 번 열등감의 괴물이 되었다. 
 
2018년이었던가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석탄에 머무르면 안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다이아몬드를 만들기로 했다.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만들기로 다짐했다. 그 때부터 습작을 차근차근 썼다. 글쓰기를 위해 사진을 반쯤 포기했다. 음악은 여전히 들었다. 그리고 이것저것 경험을 했다. 많이 놀기도 했다. 휴학한 이후에는 인스타그램 활동이 현저히 줄었다. 나는 석탄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숨어있다가 서프라이즈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선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작년부터 나는 예전처럼 인스타그램에 나의 날것 같은 감정을 배설하지 않았다. 설명을 아꼈다. 핵심만 던졌다. 그게 프로페셔널하다고 생각했다. 인스타그램에 석탄 같은 감정을 쓸 바에 에너지를 아껴서 좋은 작품을 구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내가 나이를 먹어서일까. 검고 검은 석탄이 예전처럼 많이 나오질 않고 있다. 예민했던, 날카로웠던, 어두웠던, 거칠었던, 그런 감정들이 어느 순간 깔끔하게 정리된 채 내 입과 손에서 나왔다. 나는 겁이 났다. 다이아몬드를 품은 석탄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너무 안일하게만 있었다는 생각에. 그렇게 펄떡펄떡 숨이 끊어질 듯이 번쩍였던 아이디어들이 말라 비틀어진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나도 나이가 드는 걸까라는 생각에. 나도 평범해지는 걸까라는 생각에. 절대로 되고 싶지 않았던, 무뎌진 어른이 된 걸까라는 생각에. 
 
그래서 다시 날카로워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시 석탄을 캐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절대로 무뎌져서는 안 된다. 무뎌진다면 차라리 죽을 거다. 그것만은 절대 안 된다. 
 
무뎌지지 않으면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만드는 것. 그것이 내 20대에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일 것이다. 
 
어쨌든 이게 내 짧은 소개이자 내가 왜 인스타그램을 활용해서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지이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오자. “예술성이라고 하기엔 뼈대가 없어 흐물흐물한, 그렇다고 취향이라 하기엔 거슬릴 정도로 삐죽삐죽 가시 돋은 나의 어떤 성향의 지속가능성에 대하여.” 예술성은 여기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말하는 것이겠다. 하지만 아직 충분한 압력과 수련이 없어서, 즉 뼈대가 없어서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반면 취향은 석탄 같은 감정들을 말하는 거겠지. 거칠고 삐죽삐죽하며 어둡고 칙칙하고 눅눅하다. 하지만 다이아몬드라는 가능성을 품은, 예술성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둘일 수도 있고, 어쩌면 하나일 수도 있는 이 것을 지속해야만 한다. 평생 간직해야만 한다. 그것을 고찰하는 것이 내 20대의 과제이고 내가 이번 전시를 통해 사유해야만 하는 것이겠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것은 그거다. 
1. 뼈대가 없어 흐물흐물한 것 +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 
2. 삐죽삐죽 가시가 돋은 것 +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이렇게 두 개로 구성하는 것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을 그리드로 쭉 내리는 영상을 프로젝터로 쏠 예정이다. 대신 삐죽삐죽 가시가 돋았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깨진 거울에다가 쏘고 싶다. 그러면 상이 사방으로 분산되겠지. 파편화될 것이다. 즉, 깨질 것이다. 삐죽삐죽한 나의 취향을 표현한다. 깨진 거울을 다는 것을 좀 어려울 것 같기도 하니 부직토에 깨진 유리 파편을 각도를 다양하게 해서 붙인 뒤에 벽에 걸까 생각 중이다. 그리고 부직토 4면에는 액자를 달고 싶다. 이유는 다음에 서술하겠다. 이건 지금 거의 확정이다.
 
두 번째는 글을 흐물흐물한 재질에 프린트를 해서 전시를 하는 것인데 무슨 소재로 해야할지 고민이다. 그냥 a4 용지에 해도 되겠지만 좀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없을까. 지금 떠오르는 건 종이빨대에 쓰는 종이 또는 티슈다. 이걸 어떻게 프린트해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수기로 적는 건 불가능하다. 인쇄소 가서 문의해봐야겠다. 아무튼 잘 젖어서 펄프처럼 흐물흐물해지는 종이에 텍스트를 인쇄할 예정이다. 그리고 물에 적셔서 전시장에 전시하려고 한다. 책이 되지 못한 채 뼈대가 없어서 흐물흐물한 나의 예술성을 상징한다. 내일 오빠랑 만나서 더 이야기해봐야겠다. 다음에는 오빠도 같이 전시에 참여하면 좋겠다.
 
벌써 새벽 세시 삼십칠분이다. 얼른 자야겠다. 
 
그리고 오늘 따라 현시원 큐레이터의 글이 자꾸 생각난다: 무엇인가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순간 우리가 잊거나 부서져 버리는 도형들은 얼마나 많을까? 애매모호하지 척 확신하면서 놓쳐버리는 무지몽매함 속의 빛나는 순간은 혹시 많은 거 아니야?


2020년 9월 30일 수요일. 
 
작품을 다 설치했다. 암막 때문에 수정이 조금 생길 수 있지만 어쨌든 다 만들었다.
 
구상했던 것에서 많이 달라졌다. 인스타그램 정방향 그리드 (3x3)을 프로젝터로 쏘는 것만 동일했다. 제목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깨진 거울을 포기했다. 안전 문제도 있었고, 너무 많은 것에 욕심부려서 초점을 흐리고 싶지 않았다. 흐물흐물한 텍스트는 말 그대로 물 안에 텍스트를 넣기로 했다. 어쩌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퇴근하는 길에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지퍼팩 안에다가 물을 채우고 내용이 적힌 카드를 넣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도 이 아이디어를 좋아했다. 
 
시간이 많이 없었기에 우리는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프로젝터에 쏠 영상을 만들었다. 내가 인스타그램을 처음 시작했을 때 혼자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했었다. 사진을 올리는 게 아니라 Pantone처럼 색깔을 올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짧은 글을 썼다. 가끔 음악을 추천할 때도 있었다. 이 색깔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나를 표현하는 어떤 패턴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의 매일 하나씩 올렸다. 2016년 7월부터 세 달간 올렸던 것 같다. 50개 남짓의 색깔들이 모였다. 이후 나는 일반적인 인스타그램처럼 사진이나 영상을 올렸다. 프로젝트는 그렇게 마무리되었고 나는 그 것을 잊고 있었다. 이번 전시야말로 그 프로젝트를 위한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 제목인 ‘오래된 시작’과 꽤 맞닿아있기도 했고, 꽤 야심 찬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독특하고 참신한 프로젝트였는데 인스타그램 아래에 깔려있는 게 아쉽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 ‘컬러 프로젝트’를 이번 기회에 끄집어보기로 했다.
 
나는 그 때 사용했던 색깔들을 전부 모았다. 그리고 실제로 인스타그램을 보는 것처럼 정방향 3x3으로 배치했다. 순서도 과거에 내가 올렸던 것과 일치하게 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슬라이드쇼로 하려고 했으나 오빠가 인스타그램 피드를 내리는 효과를 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영상으로 다시 제작했다. 그건 오빠가 만들었다. 한 줄 한 줄 미끄럽게 내려가는 효과를 넣었다. 이 영상을 usb에 넣고 프로젝터에 꽂아 무한 반복시켰다. 이렇게 프로젝터는 마무리되었다.
 
두 번째는 팩이다.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지퍼백이었다. 하지만 오빠가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빳빳하고 깔끔한 팩을 추천해주었다. 우리는 같이 방산시장에 가서 적합한 것을 구매했다. 세 번째는 텍스트다. 색깔과 마찬가지로 나는 그 때 썼던 짧은 글들을 모두 모았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나를 대표하는 글 9개를 선정했다. 이를 A6 크기에 들어갈 수 있도록 편집했다. 나는 산돌고딕체로 워드에 작성해서 프린트했다. 오빠는 그렇게 하면 가독성이 떨어진다고 하여 다시 수정했다. 오빠가 디자인한 글씨체는 훨씬 굵고 컸다. 그래서 눈에 확 들어왔다. 이 글씨체로 정하고 우리는 충무로 인쇄소에 가서 인쇄했다. 코팅되지 않은 두꺼운 마분지에 인쇄를 했다. 처음에는 종이 방향을 가로로 인쇄했다. 하지만 팩에 넣기에 적합하지 않아서 다음 날 오빠가 인쇄소를 재방문해 세로로 뽑아왔다. A4용지는 물에 담그면 몇 시간만 지나도 휴지처럼 흐물흐물해지는 반면 마분지는 빳빳하게 오래 버텼다. 
 
전시 공간에 도착했을 때 나는 우선 검은 종이로 창문을 가렸다. 새어 들어오는 빛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고정시켰다. USB를 끼워 영상도 재생했다. 그리고 팩 아래를 테이프로 붙였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물을 넣었을 때 아래 바닥이 펴지면서 모양이 배불뚝이처럼 퉁퉁해진다. 너무 툭 튀어나오기도 하고 무거워지기도 해서 바닥이 펴지지 않도록 테이프로 붙여버렸다. 오빠가 인쇄소에서 텍스트를 인쇄하고 전시 공간에 도착했다. 우리는 종이를 하나하나 잘랐다. 그리고 팩 뒤에는 양면 폼테이프를 붙였다. 그 안에 물을 반 정도 넣었다. 그리고 색깔 하나의 중앙에 올 수 있도록 조심하게 측정해서 벽에 꾹 붙였다. 색깔 칸이 3x3, 즉 9개이기 때문에 팩도 9개 각각 칸 중앙에 붙였다. 붙이고 나서는 자른 텍스트를 놓고, 쓰여진 내용이 적당히 잠길 때까지 물을 추가로 넣었다. 그리고 팩 입구를 닫았다. 그렇게 9개의 팩을 붙였다. 영상까지 쏘아서 완성된 작품을 다시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전선 정리를 했고, 쓰레기를 버렸다.
 
내가 구상했던 것과 꽤 비슷하게 나와서 흡족했다. 오빠도 몹시 맘에 들어 했다. 물을 사용한 것이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물이 볼록렌즈와 같은 역할을 해서 글자가 왜곡되어 보였다. 그리고 물에 잠긴 모습 자체가 갑갑한 인상을 주었다. 반면 3x3 그리드의 색깔과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팩은 차가울 정도로 딱 떨어졌다. 은색 비닐 재질의 팩도 재미있었다. 색깔을 반짝반짝 반사하는데 작품과 잘 어울렸다.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예산을 사용하여 만족할 만한 작품을 만들었다. 이틀 내내 먼지투성이 계단에서 작업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어서 힘들었지만 끝나고 나서 매우 뿌듯했다. 우리는 근처 투다리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우리의 첫 작품을 기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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